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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법난 문예공모전 수상작-산문] 도해스님 ‘고무신’- 성주사 문도 도해스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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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주사 작성일22-11-10 11:47 조회1,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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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부문 대상] 도해스님(해인사 승가대학 2학년)
​​​​​​​고무신



화창한 오후였다. 말년 병장인 영수는 작업을 마치고 내무반에 누워 있었다. ‘하 이제 얼마 남았지?’ 매일 전역 날짜를 세고 있지만, 하루하루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영수야, 중대장님이 불러.” 내무반 문을 열고 동기인 행정병 정훈이 들어왔다. “아, 왜?” “몰라, 빨리 가봐.” 영수는 침상에서 일어나 옆에 던져둔 전투복을 챙겨 입고 중대장실로 내려갔다.

“충성, 병장 최영수 중대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중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수야,” “병장, 최영수.” “너 전역까지 얼마나 남았지?” “석 달 남았습니다.” “그래 얼마 안남았네.” “너 파견 좀 다녀와야겠다.” “네? 제가요?”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영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똘똘한 !!으로 짬밥 되는 애로 보내 달라잖아. 니가 좀 다녀와라. 외근이 많다니깐 제대 전에 바깥 적응도 좀 하고. 너 운전 잘하지?” “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 영수였다. “오후에 사람이 올 테니까 필요한 거 챙겨서 출발해.” “꼭 제가 가야 합니까? 2소대 김 병장도...” 제대 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영수였다. “니가 가. 우리 부대에 너만 한 !!이 있냐?” “하, 알겠습니다.” 영수는 전역 전까지 아무 일 없길 바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에잇, 뭔 일 있겠어?’

영수가 파견된 부대는 임시로 신설된 부대 같았다. 영수 말고 여기저기서 끌려온(?) 사병들이 보였다. 군복을 입은 군인과 사복을 입은 경찰이 섞여 있었다. 작전은 다음 날 시작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국적으로 동시에 진행된 것이었다. “최영수 병장, 저기 3071차 운전석에 타게.” “네, 어디로 갑니까?” “해인사.” “네?” 되묻는 영수였다. “해인사라면 절 말씀입니까?” “앞에 차 따라가.”

몇 시간을 운전해서 해인사에 도착했다. 군용 짚차 3대와 트럭 1대가 함께 왔다. 영수와 함께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군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인사에 도착한 그들은 절 주변을 둘러본 후 멀리 보이는 언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저기도 절 같은데?” “최 병장, 저기로 운전해.” 차를 몰고 올라간 곳은 조그마한 암자였다.

늘 그렇듯 새벽 예불을 마치고 공양간으로 갔다. 그해 10월 27일의 새벽은 여느 날과 달리 제법 쌀쌀했다. 도해는 밤사이 은사 스님이 걱정되었다. ‘아궁이에 나무를 더 넣어 놓을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한 도해였다. 은사 스님 방 촛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아직 깨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춥지는 않으신 듯했다.

된장찌개와 호박 무침, 그리고 갓 담근 김치와 두부. 소박한 아침상이다. 끓인 된장찌개를 찬상에 올리려는데 늘 쓰던 행주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암자 주위에서 지내다 가끔 공양간을 해지곤 하는 고양이 짓이 분명했다. 아궁이 불에서 끓이는 찌개라 매우 뜨거웠다. 대충 젓가락으로 집어서 올리려다 발등으로 찌개가 쏟아졌다. 잽싸게 발을 뺐지만, 고무신에 쏟고 말았다. 닦아 내려고 했지만 흰 고무신이라 흔적이 남았다. 왠지 찝찝했다.

공양준비를 마치고 은사 스님을 깨워야 했다. 세숫물을 방 앞에 두고 스님을 불렀다. “스님, 세숫물 받아왔습니다.” “그래.” 연세가 많으신 스님은 거동이 불편했다. 그래서 누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다. 도해는 스님의 막내 상좌였다. 예전에 많았던 사형 스님들은 모두 각자의 생활을 위해 나가 있다. 지금은 도해가 스님을 모시고 있었다.

암자는 해인사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큰 절 옆이라도 작은 암자라 찾아오는 이가 많지 않았다. 스님이 연세가 드시고 조용히 지내고 싶어 택한 곳이었다. 이전에 크고 작은 소임으로 바쁘게 살아오셔서 더욱 그랬다. 스님과 공양을 마치고 밭일이 있어 급하게 일어났다. 텃밭은 암자와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한 도해는 밭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일을 마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군용 짚차였다. ‘누구지? 이 시간에 오는 이가 없는데?’ 차에서 누군가 두세 명이 내리는 것을 본 도해는 뛰어서 암자로 내려왔다. “헉헉, 누구시오. 여긴 어쩐 일이요.” 그들은 들은 체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여기도 중이 사나?” 스님이 방문을 여시면서 말했다. “뉘시오?” 거동이 불편한 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여기 둘이 살아?” “그렇소만, 누구시오. 무슨 일이요.” “영감도 중이요?” “무슨 일이요.” “무슨 일은.” 말이 끝나자마자 지팡이를 발로 걷어찼다. 기운이 없던 스님이 쓰러졌다. “무슨 짓이요.” 도해가 달려들었다. 옆에 있던 이가 도해를 붙잡고 쓰러뜨렸다. 신고 있던 고무신 한 짝이 벗겨졌다. 아까 찌개의 흔적이 남은 쪽이었다. 고무신을 군화 뒤꿈치로 짓이기면서 말했다. “야, 이 새끼 끌고 가.” 고무신 뒷부분이 힘없이 찢어져 너덜해졌다. 도해는 끌려가면서 악착같이 신발을 다시 신었다. 찢어진 고무신은 끌려가는 와중에 벗겨지려고 했지만, 간신히 발에서 버티고 있었다.

“도해야.” 스님이 손을 뻗으며 불렀다. “영감은 꺼져! 같이 끌려가고 싶어?” “이보시오. 놓으시오. 내 발로 가겠소.” 그들은 사정없이 군용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스님, 걱정마세요. 금방 올 거예요.” 차 안에 태워진 도해는 밖으로 외쳤다. “시끄러워.” 도해를 양쪽에서 붙잡으며 소리쳤다. 끌려가는 차 안에서 밖을 보니 다른 군용차 몇 대가 보였다. 군용 트럭도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절에 와서 산 쪽을 둘러보던 중 작은 건물이 보여 스님과 도해가 사는 암자로 들이닥친 것 같았다. 도해는 어리둥절했다. “왜 이러시오. 이유는 알고 갑시다.” “가보면 알아!”

영수는 이 광경을 차 안에서 지켜보았다. ‘스님들에게 왜 저러지.’ 뛰쳐나가서 말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영수는 어릴 적부터 불교신자인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가곤 했다. 해인사도 부모님 손을 잡고 몇 번 와본 기억이 있었다. 스님은 믿음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스님에게 저렇게 행동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영수는 얼마 전 동기인 정훈에게 들었다.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 군인들과 시민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은밀히 진행된 작전이라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잘 알지 못했다. 정훈도 옆 부대에 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이었다. ‘혹시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 광주에서 간첩들이 시민들을 선동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스님을 태우고 간 곳은 원주 보안사였다. 군인들은 스님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수는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따라갔다. 입구에 찢어진 고무신 한 짝이 널브러져 있었다. 끌려 들어간 스님의 신발이 분명했다. 고무신을 챙겨 들었다. 안에는 영수가 태우고 온 스님 이외 스님도 여럿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먼저 끌려온 듯했다. 군인들은 스님을 복도 양쪽으로 줄을 세워놓고 소리쳤다. “빨리 움직여!” “똑바로 서!”

영수는 태우고 온 스님을 찾았다. “저기.” 스님께 다가가려고 하자 군인들이 막아섰다. “잠시만요. 이 신발 좀.” “뭐?” “이 신발을 갖다 드리고 싶어서요.” 영수는 스님을 향해 다가갔다. 발에는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이미 찢어진 고무신이지만 스님에게 신겨 드렸다. “신으세요. 스님.” “고맙소.” 영수는 밖으로 나와 가만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참을 달리고서야 차는 세워졌다. 그들은 어리둥절해 있는 도해를 강제로 끌어 내렸다. 그리고 빨간 벽돌로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스님들이 복도를 따라 줄지어 있었다. 모두 승복 대신 허름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군인 한 명이 다가와 도해에게 말했다. “갈아입어.” “뭐요?” “입으라는데. 뭔 말이 많아.” 군인 셋이 달려들어 입고 있던 승복을 강제로 벗겼다. 승복은 견디지 못하고 찢어졌다. 곁에 있던 스님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만 갈아입으시오. 저!!들은 짐승이오.”

도해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군인들은 스님들을 한 곳에 몰아넣었다. 잡혀 온 스님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전부 말없이 천장을 쳐다보거나 맥없이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갑자기 끌려온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잠시 후 한 명씩 불려 나갔다. 그들은 법명을 부르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스님에게는 견디기 힘든 수치였다. 그들에게 우리가 누군지는 관심 없었다. 오로지 본인들의 목적만 이루면 되었다. 하지만 도해를 비롯한 스님들은 그 목적조차 알지 못했다.

이 와중에도 도해는 신발을 챙겨 준 군인이 무척 고마웠다. 승복이 벗겨진 상황에서 본인이 스님이라는 것을 자각시켜주는 것은 하얀 고무신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고무신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찢어지긴 했지만, 도해에게 남은 건 고무신이 전부였다. 찌개를 쏟아 자국이 남은 고무신의 찝찝함은 평화로웠던 기억으로 변했다. 은사 스님은 잘 계실까. 본인의 안위보다 거동이 힘든 은사 스님이 걱정이었다.

“거기, 나와.” 도해를 부른 거 같았다. 힘겹게 일어섰다. 문밖으로 나가니 군인 두 명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낡은 철문을 들어서니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의자에 도해를 앉히곤 군인들은 취조를 시작했다. “너 간첩이지?” “...” 도해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왜 간첩이 됐지?’ “간첩이 절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너 간첩이지.” 도해는 가만히 본인을 취조하는 군인을 응시했다. 그 군인은 도해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억.”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너 간첩이지?”

같은 물음과 침묵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 자신이 간첩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멀리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멀리 떠나 세상의 구석으로 가버린다고 한들 그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겁한 압박 아래 명예도 자부심도 자존심도 사라졌다. 열정이 식고, 충격이 개입하고 난 후 남은 것이 없었다. 어두운 고통뿐인 공간에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지금 승려인 것을 알 수 있는 건 찢어진 고무신뿐이었다. 하지만 그 고무신은 나를 지켜줄 수 없었다.

영수는 명령에 따라 차를 몰았다. 그리고 스님들을 강제로 태우고 보안사로 돌아왔다. 이런 행동이 몇 날 동안 반복됐다. 영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을 알기 한 참 부족한 나이에 벌어진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법이나 신념보다 힘을 가진 자의 명령이 이 취약한 사회를 이끌고 있었다. 영수는 이 시간이 멈춰지길 바랐다. 다가오는 시간을 잠시 밀어내고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세상이 달라졌다. 2003년에 들어선 노무현 정부는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과거사 진상규명법도 그중 하나였다. 4대 개혁법안은 여야의 적당한 타협으로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진전이 있었다. 과거사 진상규명법에 10·27 불교 법난에 관한 진상규명도 포함되었다. 여러 큰 스님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었다.

영수는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던 중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법난 당시의 상황을 피해자였던 스님들과 가해자였던 군부 측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으로 고통받던 영수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법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자가 모르쇠로 일관하던 모습도 보았다. 욕망의 끝을 향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던 인간이, 욕망과 가장 멀어져 있는 승려를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 지려 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그자들은 스님들의 정신과 육체를 오랜 시간 동안 괴롭혔다. 가슴을 뚫어 심장을 움켜 지고 마음을 조였다. 배를 갈라 창자를 비틀어 육체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전혀 무관한 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짓은 비겁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용서받고 화해할 기회를 버리고 자신의 과오를 남에게 떠넘기는 짓도 마찬가지다.

영수는 차를 몰고 20여 년 전 그곳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흰 고무신 한 켤레를 샀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크게 불렀다. “계십니까.” 연세가 그득하신 스님이 한 분 나오셨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스님이 맞았다. “스님.” “누구요.” “스님, 20년 전 기억하십니까.” 스님은 한참 동안 영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수는 사 온 하얀 고무신을 스님께 내밀었다.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스님은 다시 한번 영수를 쳐다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가만히 있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그리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했다. 누군가는 괴로움의 시간을, 또 누군가는 미안함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스님은 앞에 있는 이가 왜 하얀 고무신을 자신에게 건넸는지 알 수 있었다.

가해자는 이제 세상에 없다. 피해자만 남았다. 용서받아야 할 이는 용서를 원하지 않았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조차 없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과 진실은 남는다. 세상이 환희 뜨고 우리의 삶이 활짝 필 때 가슴에 꽂힌 가시들이 쉬이 뽑힌다.

△ 에필로그

나는 출구가 없어 끝을 알 수 없는 암흑 같은 터널 속을 오랫동안 헤매고 있었다. 어떻게 들어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그때 멀리서 빛줄기 하나가 새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몸을 이끌고 빛으로 향했다. 오로지 그 빛만이 희망이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빛은 점점 커져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부처님이 내어준 손길이라는 것을. 그것은 온몸을 싸매고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차가운 어둠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냈다.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머리부터 발끝으로 퍼져 나갔다. 부처님 손안에 가만히 몸을 뉘었다. 편안함과 이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흘렀다.

지금까지 날 억눌렀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으리라.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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